지난 몇 년 동안 글로벌 AI 경쟁은 '누가 더 뛰어난 거대언어모델(LLM)을 만드는가'에 집중돼 왔다. GPT-4와 Claude, Gemini, Llama, DeepSeek 등 새로운 모델이 등장할 때마다 시장의 관심은 벤치마크 점수와 추론 능력, 파라미터 규모에 쏠렸다.
그러나 2026년 들어 경쟁의 중심축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제 AI 기업들은 더 이상 모델 하나만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모델을 중심으로 클라우드, 반도체, 개발 플랫폼, 기업 업무, 개발자 생태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는 기업이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8월 3일 알리바바와 MiniMax가 각각 발표한 전략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알리바바가 팔려는 것은 AI 모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알리바바의 발표를 "2조4천억 파라미터 모델 공개"라는 뉴스로 기억한다. 그러나 실제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Qwen3.8-Max 자체보다 QwenWork였다. 알리바바는 모델 공개와 동시에 기업용 AI 에이전트 플랫폼을 함께 발표했다. 이 플랫폼은 문서를 작성하는 AI가 아니라 기업의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AI를 목표로 한다. 법률 검토, 계약 분석, 재무보고서 작성, 데이터 검색, 회의자료 작성 등을 하나의 워크플로 안에서 처리하도록 설계됐다.
특히 딩톡(DingTalk)과 연동해 기업 내부 데이터베이스와 연결하고, 직원들이 만들어 놓은 업무 프로세스를 조직 전체가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점은 기존 생성형 AI 서비스와 다른 접근이다. AI를 '챗봇'이 아니라 '디지털 직원(Digital Worker)'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미국 기업들의 AI 에이전트 전략과 유사하지만, 중국은 이를 자국의 협업 플랫폼과 클라우드 서비스 안으로 빠르게 통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MiniMax가 공개한 것은 영상 생성기가 아니다
MiniMax 역시 H3라는 새로운 비디오 생성 모델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 역시 핵심은 영상 생성 성능이 아니었다. 오픈소스 공개와 동시에 화웨이 Ascend를 비롯한 중국 AI 반도체 기업들이 즉시 지원을 발표했고, Hugging Face, ModelScope, ComfyUI, SGLang, vLLM-Omni 등 주요 개발 플랫폼이 연동에 나섰다.
이는 새로운 AI 모델 하나가 아니라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동시에 움직였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새로운 모델이 발표되면 몇 달 동안 개발자들이 환경을 구축해야 했다. 이번에는 발표 당일부터 개발자들이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함께 제공됐다. 생태계 구축 속도 자체가 경쟁력이 된 것이다.
중국 AI는 왜 오픈소스에 집중하는가?
흥미로운 점은 최근 중국 주요 AI 기업들이 대부분 오픈소스를 적극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DeepSeek가 촉발한 흐름은 이제 Qwen 시리즈와 MiniMax H3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공유가 아니다. 오픈소스는 개발자를 모으고, 개발자는 응용 서비스를 만들며, 응용 서비스는 다시 클라우드 사용량과 AI 반도체 수요를 늘린다. 즉 모델 공개 자체가 하나의 산업 정책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미국의 일부 기업들이 고성능 모델을 폐쇄형 서비스로 운영하는 것과 비교하면, 중국은 개방형 생태계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모든 기업이 같은 전략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기업들도 상용 서비스와 오픈소스를 병행하며 수익성과 생태계 확장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
AI 경쟁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AI 경쟁은 모델 성능 순위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기업들은 “얼마나 똑똑한가?”보다 “실제 업무를 얼마나 대신할 수 있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개발자들은 “모델이 공개됐는가?”보다 “즉시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투자자들은 “벤치마크 점수”보다 “얼마나 많은 기업 고객을 확보했는가?”를 본다.
이는 AI 산업이 연구 중심 시장에서 산업 중심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변화
우리나라에서도 초거대 AI 모델 개발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쟁은 모델 숫자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실제 사용할 플랫폼, 산업별 AI 에이전트, 개발자 생태계, 오픈소스 커뮤니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클라우드와 반도체까지 함께 성장해야 한다.
중국 기업들이 이번 발표에서 보여준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알리바바는 모델을 기업 업무와 연결했고, MiniMax는 모델을 개발자 생태계와 연결했다. 두 기업이 선택한 길은 다르지만 목적지는 같다. AI를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산업 인프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글로벌 AI 경쟁의 기준을 다시 정의할 가능성이 있다. 모델 성능이 아니라 생태계를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고, 얼마나 많은 기업과 개발자를 끌어들이느냐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 회 예고
제3편 「중국 AI 1조 위안 시대, 한국 AI 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중국 AI 산업 규모 1조2천억 위안 시대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시장 확대가 아니다. 제3편에서는 중국 정부의 산업 정책과 기업 전략을 바탕으로 한국 AI 산업이 직면한 기회와 과제를 짚어본다.
윤교원 대표 / The K Media & Commerce, kyow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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