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전 도안동 ‘로 세라믹 클럽’ 김은선 작가 |
대전 도안의 한적한 주택가 안쪽. 모던한 외관의 작은 공간에 들어서면 노출콘크리트의 질감과 흙의 색감, 그리고 곳곳에 놓인 도자 작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공방이라기보다 작은 갤러리에 가까운 첫인상이다. 한쪽에는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점토가 놓여 있고, 선반과 벽면에는 김은선 작가가 직접 만든 작품들이 차분하게 자리한다.
이곳의 이름은 ‘로 세라믹 클럽’. 이름부터 조금 특별하다. ‘로(Ro)’는 노르웨이어로 평온함과 편안함을 뜻한다. 여기에 세라믹과 클럽이라는 단어를 더했다. 도자기를 만드는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잠시 쉬어가는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곳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흙을 만지는 시간이 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의미다.
김은선 작가는 이곳을 설명하며 ‘편안함’이라는 말을 여러 번 꺼냈다. 도자기를 잘 만드는 것만큼이나 흙을 만지는 순간만큼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 사진 = 로 세라믹 클럽 |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던 어린 시절, 결국 흙을 만나다
김 작가의 이야기는 의외로 도자기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무엇을 전공할지 구체적으로 알기도 전부터 “나는 미술대학에 갈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실제로 서울여자대학교 공예학과에 진학했다.
공예학과에서는 도자와 섬유를 접할 수 있었다. 옷을 좋아했던 그는 처음에는 섬유 쪽을 선택해 이후 의류 관련 분야로 진로를 넓혀볼 생각도 했다. 하지만 막상 여러 재료를 직접 경험해보니 마음을 움직인 것은 흙이었다.
“흙이 훨씬 재미있었어요. 직접 만지고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도 컸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도자 쪽으로 가게 됐어요.”
![]() ▲ 사진 = 로 세라믹 클럽 |
학부 과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그러던 중 교수의 권유로 도자 전문 잡지사에서 기자로 활동하게 됐다. 기사를 쓰고 사진을 찍으며 작가들을 취재하는 일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경험이 오히려 작가로서의 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여러 작가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다른 사람의 작업을 바라보는 것보다 자신의 작업을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결국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마무리했고, 이후 친구의 공방에서 함께 작업했다. 결혼을 계기로 대전으로 오면서 비로소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로 세라믹 클럽’이다.
![]() ▲ 사진 = 로 세라믹 클럽 |
혼자 작업하려고 열었던 공간,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공간이 되다
처음부터 클래스를 중심으로 공방을 운영할 계획은 아니었다. 김 작가는 스스로 사람들과 활발하게 대화하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작업실을 먼저 만들고 클래스는 조금씩 진행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대전에 와보니 아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클래스를 하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저도 에너지를 받게 되더라고요.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제가 오히려 이 공간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얻고 있는 것 같아요.”
공방은 그렇게 단순한 작업실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잘 만든 결과물’보다 ‘만드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 작가의 교육 방식이 자리 잡았다.
![]() ▲ 사진 = 로 세라믹 클럽 수업 모습 |
“잘 만드는 것보다, 먼저 흙을 재미있게 만져봤으면 해요”
도자기 공방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영화 ‘사랑과 영혼’ 속 물레 장면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도자기는 물레만으로 완성되는 작업이 아니다. 손으로 직접 흙을 빚는 핸드빌딩 역시 중요한 방식이다.
‘로 세라믹 클럽’에서는 물레 수업과 핸드빌딩 수업을 함께 운영한다. 특히 김 작가가 공방을 열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프로그램이 어린이들을 위한 ‘흙놀이 수업’이다.
그 배경에는 과거 외부 출강 경험이 있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정해진 틀에 따라 작품을 만들도록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어린아이들의 흥미가 빠르게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무엇인가를 완성해야 한다는 목표가 오히려 흙 자체를 즐기는 경험을 방해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수업 중간에 아이들이 흙을 자유롭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형태가 조금 망가져도 괜찮고, 정답도 없는 시간이었다.
![]() ▲ 사진 = 로 세라믹 클럽 흙놀이 모습 |
“아이들이 흙을 재미있게 가지고 논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했어요. 그래서 공방을 열면서 아예 흙놀이 수업을 만들어봤죠.”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자유롭게 흙을 만지면서 즐거워했고,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 김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작품의 형태를 만들어야 하는 과정에서는 필요한 만큼 도움을 주지만, 그 이후에는 일부러 개입을 줄인다.
“아이들이 잘못 만지면 작품이 망가질 수도 있으니까 선생님이 많이 개입하게 되거든요. 저도 꼭 필요한 경우에는 도와줘요. 하지만 형태를 만든 뒤에는 자유롭게 만져볼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흙을 찔러보기도 하고, 눌러보기도 하고, 때려보기도 하면서요. 결과물이 망가져도 괜찮은 시간이죠.”
이 모습을 지켜본 부모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아이에게 혼자 해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됐고, 김 작가 역시 자신이 생각했던 수업의 방향에 확신을 갖게 됐다.
![]() ▲ 사진 = 로 세라믹 클럽 |
아이의 즐거움이 부모의 체험으로, 다시 입소문으로
현재 공방을 찾는 방문객은 어린이가 조금 더 많은 편이다. 체감상 어린이와 성인의 비율은 6대 4 정도. 도안동 인근에서 찾아오는 방문객이 많은 가운데 다른 지역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주차가 가능한 점도 방문객들의 편의를 높이는 요소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재방문이다. 아이가 먼저 체험한 뒤 부모가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가족이나 친구에게 추천하는 경우도 이어지고 있다.
“‘아이가 너무 재미있어해서 저도 해보고 싶었어요’라고 하면서 오시는 어머님들도 계세요. 아이가 먼저 여러 번 오기도 하고요. 성인분들도 주변에 살면서 도자기 공방을 찾고 있었는데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며 다시 찾아오시는 경우가 있어요.”
몇 번씩 원데이 클래스를 반복해서 찾는 방문객도 있다. 다시 찾아온 사람들은 “너무 재미있어서 또 왔다”는 말을 남기거나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권했다고 이야기한다.
김 작가에게는 이런 말들이 단순한 고객의 후기가 아니다. 자신이 만들고 있는 공간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이기도 하다.
![]() ▲ 사진 = 로 세라믹 클럽 |
작가 김은선의 작품에는 ‘편안함’이 있다
공방 한편에 전시된 작품들을 바라보면 ‘로 세라믹 클럽’이라는 공간의 분위기와 김 작가의 작품 세계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김 작가는 원래부터 편안한 느낌의 형태를 좋아했다. 자주 손이 가고, 오래 바라보아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것. 일상에 자연스럽게 놓일 수 있는 형태를 추구한다.
대학원 시절부터는 식물을 주제로 작업해왔다. 식물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최대한 단순화해 심플한 형태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테이블웨어를 중심으로 작업했지만 이후 화병과 세라믹 오브제, 액자 작품 등으로 작업 영역을 넓혔다. 특히 벽에 걸어 감상할 수 있는 액자 형태의 작품은 전시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판매로도 이어졌다.
친오빠가 운영하는 카페에 작품을 선물해 걸어둔 것을 계기로 작품을 문의하는 사람도 생겼다.
“제가 좋아하는 건 자주 손이 가고 편안한 느낌이에요. 분위기도 그렇고 모양도 조금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눈에 거슬리는 게 없는 형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가 만드는 도자기에는 그렇게 작가의 취향이 담긴다. 화려하게 시선을 끌기보다 일상 속에서 오래 머무는 물건에 가깝다.
![]() ▲ 사진 = 로 세라믹 클럽 클래스 작품 |
도자기를 넘어, 언젠가는 하나의 리빙 브랜드로
김 작가가 바라보는 ‘로 세라믹 클럽’의 미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넓다.
가까운 목표는 무엇보다 수강생들의 작품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도자기는 제작 과정에서 여러 변수가 발생한다. 흙의 상태부터 건조, 소성, 유약까지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많다.
그만큼 시행착오를 줄이고 수강생들이 보다 만족스러운 작품을 받아갈 수 있도록 제작 과정 자체를 계속 다듬어갈 계획이다.
조금 더 먼 미래에는 도자기라는 영역을 넘어 홈데코와 생활 소품까지 아우르는 리빙 브랜드를 꿈꾼다.
“집 꾸미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제품을 찾다 보면 ‘이런 게 있으면 좋을 텐데’, ‘왜 이런 모양은 안 팔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거든요. 꼭 도자기가 아니더라도 제가 만드는 도자기와 어울리는 소품들을 함께 제작해보고 싶어요.”
도자기와 어울리는 생활 소품을 만들고, 그것들이 하나의 세트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브랜드. 그렇게 언젠가는 ‘로 세라믹 클럽’이 단순한 도자기 공방을 넘어 편안하게 들어와 물건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는 작은 리빙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 ▲ 사진 = 로 세라믹 클럽 |
더 많은 사람이 흙을 경험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도도 시작된다. 오는 9월부터는 온라인 플랫폼 에이블리를 통해 클래스 예약이 가능해질 예정이다. 짧은 시간 동안 부담 없이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일정 사이에 잠시 시간을 내어 흙을 만져보고 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정말 30분 정도 시간이 비는 날에도 잠깐 들어와서 체험하고 갈 수 있는 수업이에요. 많은 분들이 조금 더 쉽게 흙을 즐겨보셨으면 좋겠어요.”
군인과 공무원을 위한 클래스도 운영하고 있다. 오랜 기간 직업군인으로 생활했던 남편과 함께 대전에서 생활하며 문화생활의 기회가 제한적으로 느껴졌던 경험에서 시작됐다. 현재 군인과 공무원에게는 일반 수강료보다 10% 저렴한 가격으로 클래스를 제공한다.
크게 홍보하지 않았음에도 이를 알고 찾아오는 방문객이 있다는 점에서 김 작가 역시 이 프로그램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 사진 = 로 세라믹 클럽 |
공예의 가치, ‘만드는 시간’까지 바라봐주길
인터뷰의 마지막에서 김 작가는 자신이 몸담은 공예 분야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꺼냈다.
공예는 사람들의 일상과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저렴한 대량생산 제품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하나의 작품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손길이 들어가는지 체감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공예를 하는 분들은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인지 잘 아세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보면 저렴한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도 많다 보니 그만한 가치를 느끼기 어려운 것 같아요.”
외부 출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난다. 1인당 몇천 원 수준의 수업료로 수십 명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제안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재료비와 강사의 노동력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남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김 작가는 학교나 기관에서 수업 예산을 책정할 때 변화한 재료비와 운영비, 강사의 노동에 대한 현실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 공예 교육을 지속적으로 담당할 강사들도 늘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다.
▲ 사진 = 로 세라믹 클럽 |
“흙을 만지는 동안에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김 작가에게 도자기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손으로 만드는 일’이 삶의 방향이 되었고,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경험을 건네는 일이 됐다.
그가 생각하는 도자기의 가장 큰 매력은 의외로 단순하다.
아무 생각 없이 흙을 만질 수 있다는 것.
“저도 생각이 굉장히 많은 편인데, 흙을 만지고 있으면 잡생각이 줄어들어요. 손에 집중하고 있어야 하니까 고민하던 것도 어느 순간 흩어져 버리거든요.”
그래서 그는 생각이 많은 사람, 시끄러운 환경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잠시 마음의 평안을 찾고 싶은 사람에게 도자기를 권한다.
무언가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흙을 만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취재를 마치고 공방을 나서면서 공간의 이름에 담긴 ‘평온함’이라는 의미가 조금은 이해됐다. 노출콘크리트와 흙, 차분하게 놓인 작품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뿐 아니라, 무엇보다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결과보다 ‘천천히 만져보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은선 작가의 철학이 공간 곳곳에 스며 있었기 때문이다.
‘로 세라믹 클럽’은 도자기를 배우는 곳인 동시에 잠시 일상의 속도를 늦추는 곳이다. 아이에게는 자유로운 놀이의 시간이 되고, 어른에게는 새로운 취미가 되며, 작가에게는 자신의 작업을 이어가는 창작의 공간이다. 흙이라는 오래된 재료가 오늘의 일상에서 어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이 작은 공방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로 세라믹 클럽’의 도자기 클래스와 작품,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공식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등 공식 채널(코셀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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