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 영통동 미니어처 공방, ‘미니유니공방’ |
작은 것에는 이상할 만큼 많은 이야기가 들어간다. 점토 한 덩어리는 한 끼의 음식이 되고, 가느다란 철사는 창틀이 되며, 나무 조각 몇 개는 오래된 가구처럼 모습을 바꾼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세계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손길과 시간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수원 영통동의 ‘미니유니공방’은 바로 그 작은 세계를 아이들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곳이다.
미니어처 공예라고 하면 정교한 작업을 즐기는 성인 취미나 전문 작가의 영역을 먼저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곳의 방향은 조금 다르다. 미니유니공방 이미라 원장은 아이들이 어렵게 느끼지 않도록 미니어처를 다시 풀어낸다. 음식과 장난감, 책상처럼 아이들에게 익숙한 소재를 골라 직접 만들고, 때로는 학생이 “이걸 만들어보고 싶다”고 가져온 아이디어에서 수업이 시작되기도 한다.
▲ 사진 = 미니유니공방 |
인터뷰를 위해 공방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작은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작품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것을 설명하는 이미라 원장의 표정이었다. 하나의 작품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어떤 방식으로 질감을 표현했는지를 이야기할 때마다 눈빛이 달라졌다. 미니어처를 ‘가르치는 일’보다 미니어처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에 가까워 보였다.
그의 출발점은 미니어처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그림 그리고 만드는 일을 좋아했고, 미술을 전공하면서 금속공예를 공부했다. 이후 주얼리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며 보석감정사 자격을 취득하는 등 보석 관련 일을 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감각은 이미 그의 삶에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었다.
결혼 후 수원에 정착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잠시 일을 내려놓았다. 약 2~3년의 경력단절 뒤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지인의 제안이었다. 영어유치원에서 일하던 지인이 미술특강 강사를 구한다며 일을 권했고, 아동미술을 해본 경험은 없었지만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해 면접을 보고 수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2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자신을 바라보는 상황도 낯설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부딪히며 수업을 이어가는 사이 생각이 달라졌다. 힘들지만 재미있었고, 아이들이 무언가를 완성했을 때 느끼는 보람도 컸다. 유치원과 미술학원에서 약 3년 동안 아동미술을 가르치며 그는 조금씩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보게 됐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이 만들기였다.
![]() ▲ 사진 = 미니유니공방 |
“아이들이 그림보다 만들기를 훨씬 좋아하더라고요.”
자신 역시 만드는 일을 좋아했던 만큼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아동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서점을 찾던 어느 날, 공예 코너에서 미니어처 관련 책을 발견했다. 작은 음식과 소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그는 아이들을 떠올렸다. ‘이걸 아이들과 해보면 좋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은 곧 공부로 이어졌다. 미니어처 관련 자격 과정과 강사 교육을 찾아 배우기 시작했고, 자격을 취득한 뒤에는 학교 방과후 수업 강사로 활동할 계획까지 세웠다. 공예 수업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자신이 가진 아동미술 경험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코로나19가 시작됐다.
학교 출강을 준비하던 시기에 교육 현장이 멈췄다. 그렇다고 미니어처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그는 조금 충동적이지만 과감한 선택을 했다. 2019년 11월 자신의 이름으로 공방을 열었다.
“공방을 하고 싶기는 했어요. 그런데 월세를 감당하려면 학교 출강도 열심히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코로나가 터진 거예요. 그래서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시작했어요.”
▲ 사진 = 미니유니공방 |
공방 문을 열고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과연 누가 배우러 올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그는 매일 공방에 나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을 켜놓고 작품을 만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유리창 너머로 공방을 보고 ‘여기에서는 이런 걸 하는구나’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오래 살아온 동네라는 점도 힘이 됐다. 지인들이 입소문을 내줬고, 자녀를 처음 보내준 가족들이 생겼다. 아이들이 공방에서 작품을 만드는 모습을 본 이웃들에게도 공간의 성격이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그렇게 하나둘 자리를 잡은 미니유니공방은 어느덧 7년째 같은 자리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미니어처는 작게 만드는 것 이상의 작업이다. 점토, 레진, 물감, 목재, 패브릭, 철사 등 작품에 따라 필요한 재료가 달라진다. 하나의 작은 화분을 만들더라도 나무로 틀을 만들고 점토로 흙을 표현하고 식물의 질감을 살린 뒤 색을 입힌다. 철사와 나무로 창이나 소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미라 원장은 일상 속 물건을 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빨대 하나를 보면서도 ‘이걸 어떻게 재료로 사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병뚜껑을 보면 테이블로 활용할 방법을 찾는다. 버려지는 물건도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재료가 된다.
▲ 사진 = 미니유니공방 |
이러한 관찰은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미니어처 공예를 배우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단순히 정해진 도안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한다.
미니유니공방이 다른 미니어처 공방과 구별되는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라 원장은 처음부터 아이들을 위한 수업을 만들었다. 미니어처 공예 자체는 결코 쉬운 분야가 아니지만, 아이들이 어렵다고 느끼지 않도록 익숙한 소재와 적절한 난이도로 과정을 구성한다.
성인 취미나 자격증 수업을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더 수익성이 높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을 고집한다.
![]() ▲ 사진 = 미니유니공방 |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말은 단순한 교육방식의 선택이라기보다 지금까지의 경력과 경험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결론처럼 들렸다. 금속공예를 공부했고, 주얼리 디자인을 했으며, 아동미술을 가르쳤다. 그리고 아이를 키웠다. 그 모든 경험이 지금의 미니어처 수업 안에서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자부심은 오래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공방에 온 학생이 어느새 중학교 3학년이 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시작해 중학생이 된 학생도 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한 뒤 지금까지 꾸준히 찾아오는 학생도 있다. 시험기간에는 잠시 쉬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온다.
공부도 아니고 입시도 아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다시 공방으로 온다.
▲ 사진 = 미니유니공방 |
이미라 원장이 이 사실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아직도 취미로 즐기며 찾아온다는 게 저는 굉장히 자부심이에요.”
오래 다닌 아이들의 작품을 보면 그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릇을 제외하면 음식 하나하나를 점토로 만들고, 팽이버섯처럼 아주 작은 부분까지 직접 제작한다. 멕시코 타코부터 오스트리아 음식, 한식과 일식, 중식까지 작품의 범위도 넓다.
흥미로운 것은 작품의 주제를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생이 “선생님, 이번에는 이 음식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그때부터 함께 연구한다. 이미라 원장 자신도 만들어본 적 없는 음식이라면 학생과 함께 자료를 찾아보고 방법을 고민한다.
![]() ▲ 사진 = 미니유니공방 |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경계가 잠시 흐려지는 순간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공방에서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처음 만난 아이들이 어느새 중학생이 됐다. 어린 시절부터 성장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에 이제는 제자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가 됐다.
수업시간에도 작품 이야기만 오가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학교 이야기를 하고, 친구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고민을 꺼낸다. 이미라 원장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먼저 살아온 어른으로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들어준다.
▲ 사진 = 미니유니공방 |
미니어처를 만드는 한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작은 대화의 시간이 되기도 하는 셈이다.
공방의 미래에 대해 이미라 원장은 의외로 거창한 확장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 지금 공간을 무리하게 키우기보다는 오래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다만 언젠가 그동안 공방을 거쳐간 아이들의 작품을 모아 작은 전시를 열어보고 싶다는 바람은 있다.
작은 갤러리를 빌려 제자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아이들이 친구와 가족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며 자랑할 수 있는 자리다. 거대한 전시가 아니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사진 = 미니유니공방 |
그리고 조금 더 먼 곳에는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수원 행궁동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간에 공방과 카페를 결합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가족과 연인, 관광객이 오가는 열린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미니어처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한 일이기에 아직은 ‘꿈’이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미니어처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분명하다.
![]() ▲ 사진 = 미니유니공방 |
인터뷰의 마지막에 이미라 원장은 미니어처를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꺼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몰두할 수 있는 취미 하나쯤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운동일 수도 있고, 독서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공예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해보고, 그 과정에서 작은 성취를 경험하는 일이다.
미니어처는 그 경험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다. 처음에는 작은 점토 조각에 불과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음식이 되고, 공간이 되고, 하나의 작품이 된다. 아이들은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이것을 만들었다’는 감각을 얻는다.
어쩌면 미니유니공방에서 만들어지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이 아닐지도 모른다. 작은 것을 끝까지 바라보고, 손으로 만들고, 실패하면 다시 고치고, 결국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해보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오래 이어가는 습관이다.
▲ 사진 = 미니유니공방 |
취재를 마치며 다시 공방 안을 둘러봤다. 곳곳에 놓인 작은 작품들은 언뜻 보면 그저 정교하고 귀여운 소품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미라 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것들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각각의 작품에는 한 아이가 집중했던 시간과 고민, 그리고 그 옆에서 기다리고 도와준 선생님의 시간이 함께 들어 있었다.
작은 것을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천천히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빠르게 결과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한 조각의 점토를 다듬고, 작은 음식을 만들고,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하는 시간. 미니유니공방이 아이들에게 건네고 있는 것은 결국 미니어처라는 기술을 넘어, 좋아하는 일을 오래 바라볼 수 있는 힘에 가까워 보였다.
그리고 그 작은 세계들이 쌓여 언젠가 하나의 전시가 될 때, 이미라 원장이 말한 ‘제자들을 위한 작은 갤러리’는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7년 동안 이어진 시간의 기록이 될 것이다.
네이버플레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