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기업연합뉴스] 윤병운 칼럼니스트 = 형식적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하면 거래소는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조문 자체가 그렇게 되어있다. 그런데 거래소가 진 사건이 몇 건 있고, 그 사건들의 논리는 하나로 모인다.
원칙: 요건 충족만이 기준이다
먼저 원칙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코스닥시장 상장규정 제54조 제1항은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해당 보통주식을 상장폐지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요건이 충족 되었는지만 확인하면 되고, 회사의 사정을 참작할 여지는 조문 문언상 열려 있지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질 심사와 갈라진다.
법원도 같은 입장을 취해왔다. 자본 전액 잠식을 자진 공시하고 감사 의견 거절까지 받은 사안에서, 법원은 개별 사정을 다시 살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09라1028). 요건이 갖춰지면 그것으로 상장폐지가 결정된다는 뜻이다.
이 원칙에는 실무상 무거운 부수 효과가 따른다. 형식 트랙의 이의 신청은 상장규정 제55조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시가총액과 주가 미달 사유에는 이의신청 절차 자체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요건에 미달하면 절차 안에서 다툴 창구가 애초에 열리지 않는다는 뜻이며, 결국 남는 것은 법정 뿐이다.
감마누 사건 — 거래소가 세심급 모두진 사건
그럼에도 거래소가 패소한 사건들이 존재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감마누 사건이다.
회사는 감사 의견 미달을 이유로 상장폐지가 결정되었고, 회사는 이에 불복해 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1심인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019년 8월 16일 선고한 2019가합102469 판결에서 원고 승소로 판단했다. 2심인 서울고등법원은 2020년 3월 25일 선고한 2019나 2038695 판결에서 항소를 기각했다. 그리고 3심인 대법원은 2020년 8월 13일 선고한 2020다 225565 판결에서 심리 불속행 기각으로 이를 확정했다.

위 그림에서 사건의 경과를 시간 순으로 보면, 2018년 9월 상장폐지 정리매매가 개시 되었고, 2019년 8월 16일 1심에서 원고가 승소했으며, 2020년 3월 25일 2심에서 항소가 기각되었고, 2020년 8월 13일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확정 닷새 뒤인 2020년 8월 18일 매매거래가 재개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인 2022년 2월 10일, 주주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주주 전원이 패소 했다. 결국 회사가 상장을 되찾기까지는 약 2년이 걸렸지만, 그 사이 주식을 처분한 주주는 단 한 명도 배상을 받지 못했다.
판시의 핵심은 재량의 존부에 였다. 법원은 거래소가 형식적 폐지 사유가 발생한 뒤에도 추가 개선기간을 부여할 실질적 재량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았다. 상장규정은 거래소의 내부적 기준일 뿐이며, 그 재량을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그 재량의 거부가 자의적이었다고 판단한 근거를 크게 네 가지로 들었다. 첫째, 최초 개선기간이 약 3개월에 그쳐 상당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둘째, 회사가 사유 해소에 필요한 조치를 이미 이행했다는 점이다. 셋째, 절차 참여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넷째, 회생절차를 통해 재감사 보고서를 3개월 내에 제출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결과는 상장폐지결정의 무효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별도의 재상장 심사는 거치지 않았다. 폐지결정이 무효인 이상 상장은 처음부터 소멸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되었고, 따라서 매매거래정지만 해제되는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그 시점이 대법원 확정 닷새 뒤인 2020년 8월 18일이다.
공통점은 하나다: 재량을 갖고도 기계적으로 행사 했다는것
거래소가 패소한 사건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논리가 하나로 겹친다. 거래소가 재량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기계적으로 행사한 것이 위법으로 평가되었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 신주발행 관련 상장유예 사건에서도 법원은, 재량의 형식은 취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예외 없이 유예해 왔다는 사정을 무효의 근거로 삼았다. (서울남부지방법원 2011. 3. 8.자 2011카합113 결정). 또한 파산 신청이 제기 됐다는 이유만으로 매매거래를 정지한 사안에서도, 법원은 그러한 형식적·기계적처리가 비례·형평 원칙에 반해 약관으로서 무효라고 판단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2020카합20221 결정). 이 사건에서는 회사가 파산 원인의 존부에 관해 어떠한 의견도 제출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는 점, 그리고 파산 선고가 내려진 후에 매매거래를 정지하더라도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되었다.
다툼의 핵심: 규정의 위법이 아니라 재량 불행사
이 사건들에서 다툴 지점은 '규정이 위법하다'가 아니라 '거래소는 재량이 있는데 그것을 쓰지 않았다'는 데있다. 이 차이가 실무를 바꾼다. 규정자체의 위법성을 다투면 거래소의 규정 제정 권한과 정면으로 부딪히게 되고, 승소한 사례도 회사 정리절차 신청 조항처럼 한정된 국면에 그친다. 반면 재량의 자의적 행사를 다투면 심판대상이 규정이 아니라 이사건에서의 구체적 처리 방식으로 옮겨간다. 따라서 승부처는 거래소의 내부 사무처리 기준과 과거 처리례를 끌어내는데 있다. 같은 사유로 다른 회사에는개선기간을 부여하면서 자신의 회사에는 이를 부여하지 않았다면, 그사실 자체가 자의성의 징표가 된다.
다만 이경로가 모든 사유에 열려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감마누 사건은 감사의견 미달 사유였고, 그 사유에는 개선기간이라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었다. 재량이 존재해야 비로소 재량의 남용을 다툴수 있는 것이며, 개선기간이 예정되어있지 않은 사유라면 애초에 다툴 재량자체가 없다.
정리하면, 규정 자체가 위법 하다고 다투는 방식은 상장 규정 조항을 심판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난의도가 높고 성공 사례도 한정적이다. 반면 재량을 기계적으로 행사했다고 다투는 방식은 이 사건에서의 구체적 처리 방식을 심판 대상으로 삼으며, 감마누 사건이 바로 이 경로를 취한 사례다.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고 다투는 방식은 사실관계 자체를 심판 대상으로 삼지만, 형식 트랙에서는 관철되기 어렵다.
남는 문제: 회사는 이겼는데주주는 전부졌다
감마누는 결국 상장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사이에 주식을 팔고 나간 주주는 아무것도 되찾지 못했다. 상장폐지에 따른 정리매매 5거래일 동안 주가는 6,170원에서 408원으로 떨어졌는데, 이는 약 93.4%의 하락에 해당한다. 그 뒤 주주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전부 패소 했다. 원고 309명이 낸 사건에 서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2. 10. 선고 2020가합589868 판결).

“상장계약의 당사자는 감마누와 한국거래소로, 감마누의 주주인 원고들은 상장계약이나 상장폐지의 당사자가 아니다”
법원은 주주의 손실을 상장계약 해지에 따른 부수적 효과로 정리했고, 상장폐지 결정이 무효라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재량권 일탈·남용이 되는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여기에서 이 연재가 거듭 확인하게 될 비대칭이 드러난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다투는 주체는 경영진이며, 그 다툼에서 이기더라도 회복되는 것은 회사의 상장이지 주주의 손실이 아니다. 그리고 그 다툼이 진행되는 동안 매매거래는 계속 정지된 상태로 남아있다.
다음 회에서는 그 다툼에 앞서 확인해야 할 시간문제를 다룬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뒤 주어지는 90일이 실제로는 언제 끝나는가 하는 문제다.
- * 정선법률사무소 정선 변호사(전, 한국거래소 법무팀 재직) · 사단법인 한국기업회생협회 윤병운 회장 연재 「상장폐지, 형식과 실질」




















